평론_김수기, 1995

현대미술은 장인적 숙련성이 지배하는 특별한 영역으로서의 회화가 갖는 역사적 지위에 대해 이미 이론적 논증을 마무리한 것으로 말해진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김명숙은 장 인적 기량과 예술만의 독점체계, 이를테면 진정성, 유일성, 정신성 등에 기초한 회화의 옛가치를 철저히 고수하려한다. 그리고 그 끈기와 무관심한 듯한 초연함은 이제는 죽어버렸지만 저 빛나는 신화를 되살리려는 영웅의 고통스러운 싸움임을 말해준다. 하긴 ‘새로움의 미학’이 선택받은 자들의 특별한 게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박판에서와 같은 광기가 거세게 지배해 온 현대미술의 발자취를 돌이켜 보면 우직스럽고 끈질긴 그 태도가 주목받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통산적인 관찰이나 구경의 대상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내면적 생활의 거울이자 대화의 상대자인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자연은 우리에게 아스라한 과거를 연상시킨다. 현대적 조건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저 근대에 대한 낭만주의적 태도가 그것이다.

그림의 전반적인 톤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어두운 가운데, 그 사이 간간히 베어든 빛의 효과는 일종의 종교적인 경외감을 느끼게 하며, 어두운 톤에 간간히 베어든 빛의 효과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신비스러운 뉘앙스와 분위기를 강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작가의 금욕적인 절제가 베어있어 언어의 의미효과를 초월한 듯이 보이게 한다. 절대적인 존재 앞에 선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태도와도 같은 저 신화의 한 장면이다. 거기에 거개의 작품들이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우는 듯 장대한 스케일을 갖고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재의 그 신비로운 나무 숲 혹은 그 숲의 실체인 절대적 힘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마저 준다. 그녀를 불러 세웠을 더 강력한 세계 속의 주권적 존재 앞에.

김명숙의 그림은 자기 자신의 체험방식에 깊이 몰입되어 있는 까닭에 외부세계에 패쇄적일 정도로 닫혀있다. 작품 외양에서의 어두운 톤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효과와 그 어두움과 빛의 효과가 일으키는 미묘한 깊이감은 그 정도를 헤아릴 수 없을만치 열려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열림은 그녀 이외에, 다시 말해 스스로 체험했다고 하는 작가 외에는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은 폐쇄적인 열림이다.

이처럼 보는 사람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그녀의 물질문명에 대한 무관한 갈망을 느낄 수 있다.그런데도 작가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수공적인 작업이 주는 정성스러움을 다하고 있다.자연의 가장 미묘하고 연약한 부분들까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자연에 대한 튼튼한 기초소묘력이 소중하고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대상에 대한 그녀의 감각을 객관화시키기 위해 애쓴 흔적들인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에게서 끊임없이 빠져나가려 하는 대상을 가시적으로 붙들기 위한 영웅적인 노력의 일환처럼 보인다.

이것은 불가능한 모험처럼 보인다. 그림의 표면은 장인적인 기질과 물질성이 가득 배어있지만, 실재 그림이 지시하는 것은 그 표면에 대해 너무나 초연하고자 한다. 광학적인 깊이의 환영을 통해 블랙홀적인 내면세계로의 공간이동을 시도하고 있다. 김명숙은 ‘새로움의 미학’이 숨가쁘게 앞만 내다보고 달린 결과 놓치고 만 소중한 것들의 생명력을 조금 더 보존하려하는 것일까? 회화의 죽음에 대한 선언보다 더욱 위축시키는 현실이 앞에 놓여있는 동시대의 문화조건은 회화의 존재론적 기반을 위협하는데 있어서 정점에 달한 듯싶다. 이론적으로는 ‘문화’라는 개념에 대해 사람들이 언급하기 시작했고 구체적인 일상에서 범람하는 ‘이미지’들이 있다. ‘가상현실’, ‘컴퓨토피아‘, ’인터액티브‘, ’인포아트‘, ’커뮤니케이션‘ 등 예술과는 이질적인 용어들이 어떤 식으로든 반영될 조짐은 가까이 광주비엔날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다. 비록 그녀가 새로움의 미학이라는 게임을 비껴서기는 했지만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 할 것인가는 앞으로의 힘겨운 과제일 것이다. 이 싸움은 그 전의 싸움처럼 결코 쉽게 처리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패쇄적으로 지키려고 애쓸수록 옥쇄처럼 죄어들 것이다. 물론그렇게 죄어든 공간이 지금의 그 초월적인 세계일 수도 있지만.

김수기 1995, 가나아트 전시리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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