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_어떤지옥

어떤 지옥,

뭉게어진 얼굴,

당신은 뭉게어져 봤는가.

철저히, 윤곽없이, 살과 얼굴이 뭉게어졌는가.

그 기억이 당신의 존재를 시시때때로 문지르고

그 자리에서 피가 흐르는가.

어둠 저 편에서 나를 바라보는 얼굴,

그 눈을 똑바로 마주 본다는 것,

내 심연에서 지금 막 솟아오르는 얼굴,

빤히 올려다보는 응시하는 눈…

다만 명징한 눈

그 눈이 왜 무서웠을까.

나도 명징하게 마주보면 되는데

명징하게

명징하게

그 순간 낸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문득 알았다.

당신

당신이 저 지옥을 겪었(는)다 해도

제 집처럼 지옥을 샅샅이 알고

귀신처럼 어둠 저 편을 뭉게진 채 헤맨다 해도

저 눈을, 저 얼굴을, 저 명징한 눈으로 마주 모았다면,

명징하게 응시해 냈다면, 당신은 이긴 것이다.

당신은 이긴 것이다.

그 말을 되뇌는 동안

눈물은 계속 흘러 내렸다.

나는 이길 수 있을까,

나는 패배하지 않았나.

_ 금산화랑 전시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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