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인디프레스 Works for the heart 에 부쳐

2007년 무렵부터 2018년경까지 이어진 이 심장연작은 가슴의 상흔들에 관한 공부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작업들은 나의 심우도였을지도 모를 미노타오르스 연작과 Works for Workers 연작, 그리고 자신의 심연에로의 하강에 관한 Katabasis 연작들과 동시에 진행되어 아마도 그 연작들에 내재되어 있을 상흔들이 Heart라는 도상을 빌어 재현된 것이리라.  
연작들 중에는 극심한 신경증에 시달리던 환자가 고통에 못 이겨 자기도 모르게 쥐어뜯어 삼킨 머리카락들이 어지러이 뭉쳐있는 흉부 X레이 사진을 보았던 기억을 되살려, 머리카락들과 담뱃재를 자리공이라는 식물의 즙에 섞어 그린 심장이 있다. 민간에서 자리공은 살충제나 지혈제로 쓰인 약재이며 신선들에게는 불로장생의 음식이었다고 한다. 심장을 인체화한 삼면화는 정신의 구심력과 원심력,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형상화한 작업이었다. 이 삼면화에서도 상처에서 흐르는 피와 그 피를 지혈해주는 제의적 의미로 자리공의 즙이 사용되었는데, 몇 년이 지나니 탈색이 되어 마른 피 자국처럼 되어버렸다.

작업을 하면서 읽었던 ‘심장의 역사’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심장이 뇌로 간주되었으며 그들은 심장으로 생각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한편 수피즘에서 심장은 내부의 황제로서 감정과 욕망을 다스리고, 신성으로 통하는 문으로 인식되었으며, 인도인들에게 심장은 브라만이 거처하는 마음의 지성소였다. 니체의 심연의 아이들은 ‘빛나는 어둠’의 세계인 가장 깊은 정신의 심연으로 내려가 마침내 심장의 박동 소리에 맞춰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대지의 아이들로 다시 태어난다.

심장 연작이 마무리될 무렵, 작업실의 심장 그림들은 더이상 물감으로 재현(represent)되기를 거부하며 오브제로 제시(present)되기를 요구하였다. 폐차에서 떼어낸 찌그러지고 녹슬고 삭은 부품들로, 숯으로, 재로, 얼음으로, 깨진 거울들로,  누더기로, 피 묻은 거즈로, 오래된 문짝으로, 진주를 품은 조개로, 연꽃으로… 하지만 제한된 작업실 공간에서 거대한 심장 오브제들을 작업하기는 아무래도 여의치 않아 마음 속 무한의 공간에 하나씩 만들어 두기로 하였다. 비록 그날 심장들의 요구에 응하지는 못했지만, 작업실에 오래도록 놓여있던 의학 사전과 응급처치법에 관한 소책자로 Heart of Master를 재현해 보았다. 낡은 의학 사전은 도교에서 말하는 일곱 개의 구멍이 난 깨달은 자의 심장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자신이 살면서 앓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스스로 진단하고 치료하면서 마침내 깨달은 자가 된 자의 심장에 나있다는 일곱 개의 구멍의 의미는 몇 년 뒤 우연히 어린 손녀에 의해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 무렵 처음으로 엄마 없이 두 주일을 보내게 된 손녀가 내게 이런 문자들을 보내왔다. “가슴에 구멍이 세 개쯤 뚫린 것 같아요.” “오늘은 가슴에 구멍이 열 개도 더 뚫린 것 같아요.” 살면서 가슴에 수없이 많은 구멍이 뚫릴 만큼의 고통을 겪어낸 자만이 비로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이리라… First Aid라고 적혀있는 낡은 소책자에는 내 자신에게 응급처치가 되어 줄 만한 문장들을 발췌하여 군데군데 적어놓았다. 돌 심장 오브제들은 아파트 화단에서 우연히 하트모양의 돌을 주운 것을 시작으로, 몇 년에 걸쳐 오가며 눈에 띄어 하나씩 모아진 것으로 심장연작의 완결작으로 미루어 왔던 Bulletproof Heart, 즉 마침내 어떠한 고통도 견뎌낼 수 있게 된 방탄심장을 대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작은 돌 심장은 손녀가 작업실 구석의 방탄심장들을 보고는 며칠 뒤 길에서 손톱만한 돌맹이를 주워 “이건 상처가 다 아물고 새 살이 돋아나는 심장이야.“라며 내 손바닥에 올려 준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 그려진 화산 연작은 휴화산 상태의 나의 심장이 표현되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아직 그려내지 못한 채 오래도록 마음에만 품고 있는 심장들이 있다. 전사의 심장, 제단에 바쳐진 심장, 인간의 영혼에 깃든 신성이 육화된 심장, 그리고 벙어리 냉가슴… (작가노트)  

A note on

이 영정들은 작년 가을 내 작업실 밖을 서성이던 낯선 할머니로 인하여 시작하게 되었다. 지나는 길에 여기 살던 친구가 생각나서 들렀노라고 하셨다. 그 친구는 바로 이 터를 내게 팔고 서울 아들네로 가신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의 안부를 물으니, 서울 가신지 1년 만에 자살을 하셨다며 말끝을 흐리시는 것이었다. The beginning of these portraits was last fall, when I encountered an unfamiliar old woman who was hanging around outside my studio. She said she was stopping by because she remembered her friend who used to live where my studio is located. That friend was an old woman who sold this land to me and went to her son’s home in Seoul. When I asked how the grandmother was doing, she blurted out, saying that she had committed suicide a year after she moved to Seoul.

며칠을 할머니 생각으로 가슴앓이 하다가, 작업실 한 켠에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인고의 세월이 아로새겨진 할머니의 얼굴이 아름다워 찍었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으로나마 이곳에 계시게 하고 싶어 부쳐두었던 사진은 이미 빛이 바래져 있었다. 이곳을 그리워하다 떠난 그 분을 그려드려는 것, 그것만이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진혼의 의식이었다. 그렇게 할머니의 영정을 그리면서, 오랜 세월 작업실 여기저기에 부적처럼 부쳐 두었던 사람들의 사진들도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오래 전 신문에서, 책에서, 영화 속 화면에서, 길에서 내 시선이 꽂혔던 그 얼굴들은 나에게 삶과 죽음의 비의를 전하기 위해 보내진 밀사들처럼 수 십 년 동안 한결같은 비장함으로 작업실의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달팽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가을 숲에 귀 기울이고 있던 눈먼 소년. 나는 그 소년의 눈꺼풀 속 가을 숲을 그려보고 싶었다. 천 년 전 어느 고승이 불렀다는 못다 이룬 사랑노래를 내게 불러주던 미친 여승. 나는 그 여승의 얼굴에서 고승을 그리워하는 공주의 사무친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의 손에 들린 죽어가는 병자. 나는 아침 햇살이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것을 보았다. 영화 런어웨이 트레인 (Runaway Train)에서 탈옥수역을 하는 존 보이트. 그는 젊은 동료를 살리기 위해 고장 난 기차를 탈선시켜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다. 어느 날 아침 신문에서 마주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광부. 그의 얼굴은 살인자의 얼굴이 아니라 수난자의 얼굴이었다. 이스라엘군에 의해 피살된 동생의 복수를 위해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하기 직전의 팔레스타인 청년의 모습. 그 입가의 미소… 그들이 아니었으면 길을 잃었을 내 정신의 등불들.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그 품에 안길 수 있었던 아버지. 쉰 살이 넘은 딸이 그리는 스무 살의 아버지. 그들의 얼굴에는 사는 동안 그들과 함께 살았던 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Thinking about the old woman for a few days, I suffered from heartache. I then found a beautiful picture, which I took when I first met her. Her face engraved with years of hard work. The photo I had put up because I wanted it to be here was already quite faded. Trying to draw her who left after longing for this place was the only ritual of requiem I could do at that time. As I drew the portrait of her, the photos of the people I had posted like talismans all over the studio for a long time came into my eyes one by one. The faces that caught my eye long ago in newspapers, books, on screens in movies, and on the road have watched over me in the studio with constant solemnity for decades, like emissaries sent to convey the mysteries of life and death to me. Blind boy crouching like a snail and listening to the autumn forest. I wanted to paint the autumn forest in the boy’s eyelids. A mad nun who sang to me a love song that a high priest had sung a thousand years ago. I saw in the nun’s face the serious expression of a princess longing for the high priest. A dying sick man in his mother’s arms. I saw the morning sun caress his face. Jon Voight as an escaped prisoner in the movie Runaway Train. He was running to his death by derailing a broken train to save his young colleague. A miner who was arrested for murdering his wife whom he met in the newspaper one morning. His face was not that of a murderer, but that of a victim. A Palestinian youth right before committing a suicide bombing to avenge his brother who was killed by Israeli forces. The smiles on his lips… The lights of my mind that would otherwise have been lost. It was only after he passed away that he was able to embrace his father. A 20-year-old father drawn by his 50-year-old daughter…

골고다에 끌려가는 예수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준 베로니카의 손수건에 새겨졌다는 예수의 얼굴처럼,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신의 모습이 아로새겨진 베로니카의 손수건이 아닐까. Their faces were imprinted with images of the gods who lived with them during their lives. Just like the face of Jesus, who is said to have been engraved on Veronica’s handkerchief that wiped the blood and sweat off Jesus’ face as he was taken to Golgotha, wouldn’t everyone’s face be Veronica’s handkerchief engraved with the image of God?

CV

김명숙 KIM MYUNGSOOK 金明淑

Education

1981Ewha Women’s University, Major in Fine Arts, Bachelor’s Degree
1988University of Houston, Graduate School of Fine Arts – Completed

Invited Exhibitions

2019Katabasis 2, Gallery Dam, Seoul, S. Korea
 Indipress, Seoul, S. Korea
 Haeum Museum of Art, Suwon, S. Korea
2013Gallery Dam, Seoul, S. Korea
2010The Works for Workers, Savina Museum, Seoul, S. Korea
2008Space 355, Tokyo, Japan
 Geumsan Gallery, Seoul, S. Korea
2006Geumho Gallery, Seoul, S. Korea
2003Savina Museum, Seoul, S. Korea
2002Geumsan Gallery, Seoul, S. Korea
 Space Mom, Cheongju, S. Korea
2001Space Mom, Cheongju, S. Korea
1999Geumho Gallery, Seoul, S. Korea
1996Space World, Busan, S. Korea
1995Geumho Gallery, Seoul, S. Korea
1994Geumho Gallery, Seoul, S. Korea
1992Duckwon Gallery, Seoul, S. Korea
1991Gallery Seomi, Seoul, S. Korea
1989Gallery Seomi, Seoul, S. Korea
1988Divers’ Works, Houston, United States

Group Exhibitions

2020Works in the Era of PandemicSeoul National University Museum of Arts, Seoul, S. Korea
2009Galerie Kuckucksnest, Berlin, Germany 
2006Korean Arts 100 Years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s, Gwacheon, S. Korea
200515th Anniversary ExhibitionGeumho Gallery, Seoul, S. Korea
2004Korea-Germany Women Artists ExchangeGiegen, Germany
2003Intensive Drawing & Soft CreativityBusan Museum of Art, Seoul, S. Korea
 Korea-Germany Women Artists ExchangeMunwha Ilbo Gallery, Seoul, S. Korea
2002BodyscapeRodin Gallery [Peullato], Seoul, S. Korea
 HealingDaejeon Muesum of Art, Seoul, S. Korea
1999LandscapeSunjae Museum, Seoul, S. Korea
1996Korean Arts of 90sTokyo National Modern Arts Museum, Japan
  Osaka National Museum of Modern Arts, Japan
1995My wayGeumho Gallery, Seoul, S. Korea
 D.M.Z.Duckwon Gallery, Seoul, S. Korea
 Korean Women Artists FestivalSeoul Museum of Arts, Seoul, S. Korea
1994Young Artist of the YearSeoul Arts Center, Seoul, S. Korea
 Young Artists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s, Gwacheon, S. Korea
 Three artistsArt Mesia Gallery, Chicago, United States
199321 Korean Modern ArtistsGallery 21, Seoul, S. Korea
 Duet: Yun Hae Nam & Kim MyungsookIndeco Gallery, Seoul, S. Korea
1992Korean Modern ArtsDuckwon Gallery, Seoul, S. Korea
 Encounter with Another WorldKassel, Germany
 Women: Empty LandscapeGalleria Museum, Seoul, S. Korea

Awards

1994Young Artist of the Year – Drawing, Seoul Arts Center

Artworks purchased by

3 pcs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s, Gwacheon, S. Korea
1Daejeon Muesum of Art, Seoul, S. Korea
1Busan Museum of Art, Seoul, S. Korea
2Tokyo National Modern Arts Museum, Japan

작가노트4

태양은 수면위로 떠오르고 새벽노을이 다시 너울거린다.
가자, 햇살이 어른거리는 저 아래로 내려가자, 나의 친구여.

우리는 지금 단지 잠들고 있는 것일까 다만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시 춤을 추고 있는 것일까 그곳은 天上일까

심연의 장막을 걷어 젖히고
우리는 물결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간다.

이제 물살은 견딜만 해졌고
빛은 불꽃처럼 춤춘다.
햇살이 비치는 곳에서는 타들어감은 없어. 아, 이 얼마나 멋진 게임인가.

가자, 저 아래로
다시 내려가자, 나의 친구여.

Patti Smith의 노래 Going under 中에서

세우라, 흔들리는 심연에 용감하고 엄숙하게 둥글고 빛나는 마음의 집을!

니코스 카잔차키스

모과 _김언희

죽어서
썩는
屍臭로 밖에는 너를 사로잡을 수 없어

검은 屍班이 번져가는 몸뚱아리 썩어갈수록 참혹하게
향그러운

이 집요한, 주검의 구애를

받아다오 당신

사진_폐마도살업자

작가노트3

목림상 전 (2019)

“여러분은 사제와 수사에게 가느니 나무에게 고백하러 가는게 낫습니다.”

-[치즈와 구더기]에서 이단으로 몰려 재판정에 선 물방앗간 주인 메노키오의 진술

어느 날 새벽 나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무들은 더 이상 내가 바라보는 대상으로서의 나무가 아니라, 오히려 나를 사유하는 주체가 되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날, 그들은 오래전에 그들이 누렸던 대지와 천상 사이를 떠받쳐 주는 기둥으로서의 세계수, 혹은 수목신의 모습으로, 혹은 누군가를 불러 세웠던 불붙은 떨기나무의 모습으로, 지금 막 떠오르는 새벽 태양과 함께 우뚝우뚝 솟아 올랐다. 나무들은 태어난 그 자리에서 주어진 운명을 거부함이 없이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으로 묵묵히 자신의 내면애 몰입함으로써 어느 덧 누리게 된 충만함과 원광처럼 빛나는 무위의 침묵으로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그 순간 내게 어떠한 수식도 거부한 채, 자신의 고유한 상승과 하강의 존재방식을 내게 체험하도록 이끌었다고 나는 기억한다.

나는 온 힘을 기울여 나무들이 내게 열어 보이는 저 내면의 길에 들어서기를 결행하기는 했지만, 내가 결코 뛰어넘어서지 못할 나의 한계지점에서 그들의 이끌림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한 채 숨을 몰아 쉬고 있을 때, 나무들은 그들이 나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사유의 궁극적인 정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 서서히 내게서 떠날 채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나무들이 그 날 내게 요구했던 만큼이 아니라, 내가 감내할 수 있는 만큼 밖에는 나무들을 체험하지 못한 채 그림을 끝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수목들이 그날 내 눈 앞에서 이루었던 신전인 이 새벽 숲들은 미완인 채 남겨지게 되었다. _1991년

“기독교에서는 창조주가 인간을 가장 공들여 빚었다고 하지만 제 생각엔 수목이야말로 창조주의 역작인 것 같아요. 바람이 제 작업실 뒷산 수목들을 휘감는 소리… 이제 곧 녹색 촛불들이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타오르는지 알려하지 않고 다만 하늘을 향한, 다만 심연을 향한 갈망으로 충만해하는 수목들의 신전을 이루겠지요.”

나무처럼 살기를! 저 아름답고 강한 집중! 저 놀라운 생장을 보라! 저 깊이를 보라! 저 곧바름이란! 저 진실이란! 곧장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서 뿌리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과거는 죽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다. 오늘 우리에겐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불확실한 생 속에서, 지하의 삶 속에서, 외로운 우리의 삶 속에서, 대기의 삶 속에서 느낀다. -바슐라르

작가노트2

The Works For Workers (2010.9.08.-10.15)

내 작업실은 산막리에 있다

허물어져가는 빈 집들이 절반이고, 연로한 농부들이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아온 산의 막바지 마을이다.

여명이 밝아오는 여름 새벽, 새소리와 경운기 소리, 호미질 소리와 괭이질 소리가 나를 깨운다. 허리가 굽어 네발짐승처럼 걸어다니면서도 호미질이 밥이라고 풀이 않난 곳까지 호미질을 하시는 할머니의 밭은 우리집 안방보다 깨끗하다. 농사짓는 소리가 지나면 고물장수와 잡화장수, 깨진 유리창과 방충망을 고치는 아저씨의 트럭에서 마이크 소리가 간간히 들린다. 그 소리들은 외양간을 작업실로 쓰던 아랫마을에서부터 10년 넘게 들어오던 소리다. 그리고 이따금 비행훈련 소리가 들린다. 작업을 마주하고 듣는 비행기 소리는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보았던 닥터 한니발의 베이컨(Francis Bacon)적인 내 작업실을 지구로 귀환하지 못하고 우주를 떠도는 우주선처럼 느끼게 한다.

이곳에 이사 오기 전에는 소들이 이십년 넘게 기거한 외양간이 작업실이었다. 오년 넘게 비어 있던 곳이지만 나는 늘 소들의 체취를 느꼈다. 외양간 뒤편에는 그 동네에서 유명한 ‘농사도사’의 기름진 담배밭이 푸르르고, 알래스카 숫사슴 한 마리가 소나무꽃처럼 자라 오른 뿔을 이고 절망적인 몸짓으로 서성이는 우리가 있었다. 유월쯤이면 뿔 잘린 사슴이 뿔에 붕대를 감고 주저앉아 귀를 자른 채 파이프를 물고 있는 고흐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9년 넘게 나는 작은 들창 너머로 농사도사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 그림농사를 지었고, 알래스카 숫사슴과 절망도 함께 했다. 말이 아닌 몸으로 스스로가 되어가는 농부들과 나무들이 늘 내 곁에 있지만 나는 아직 그들의 묵묵함에서 멀리 있다.

산막리에서의 일들을 정리하며 “The Works for Workers”라고 이름 붙일까 한다.

사전에 의하면 work란 1.일,노동,공부,연구,과제,작업,노력 2.(생활을 위한)일(자리),직업 3.(종종~s)행위, 행동(deed),짓(act) 4.(pl)토목,공사,건조물 5.(예술)작품,저작을 의미한다고 되어있다.

15장의 미노타우로스(Minotauros) 연작은 상념의 미로를 탐색하는 소에 관한 공부였다. 10장의 Unknown workers 연작은 카프카의 동물들처럼 짐승이 되어서야 실존의 상태에 이르는, 자신의 한계를 work하며 실존의 도정에 있는 존재들에 관한 공부들이었다. Works for Hearts 연작은 그들의 상흔에 관한 공부들이 아니었을까.

돌이켜보니 지난 25년 동안의 작업들은 work(deed)에 관한 공부였던 것 같다.

시지프스(Sysiphus)에 관한 공부들, 나무의 나무되기에 관한 공부들, 자신의 심연에로의 하강을 수행하는 유영하는 사람들에 관한 공부들, 수련연작을 하고 있는 86살의 모네에 관한 공부들, “노동은 나의 강령이다”라고 말했던 밀레의 농부들에 관한 공부들. 밀레의 농부들은 내게 시지프스의 초상이었다. 그가 그린 키질하는 사람들은 곡식 낱알이 빛 알갱이가 되고, 키질이 무도가 되어갈 때 까지 키질을 계속한다.

The awful daring of a moment surrender

which an age of prudence can never retract.

By this and this only, we have exist.

-The Waste Land, T.S.Eliot

노련한 분별로도 삼갈 수 없는

한순간의 귀의, 그 경이로운 결행

이것으로 이것만으로 우리는 존재해 왔느니.

등에 맺힌 이슬방울이 입으로 굴러내리는 것을 받아먹기 위해 이른 새벽 나미브사막의 딱정벌레들은 어김없이 사구에 달려 올라가 물구나무를 선다. 딱정벌레들의 등에 맺힌 물방울이 이슬방울인지 땀방울인지 나는 모른다.

늘 한계와 회의, 무력감과 공허에 시달리지만 일(work)은 그런 잡초들을 잠시나마 뽑아준다.

작가노트1

영정 전 (2013)

이 영정들은 작년 가을 내 작업실 돌담 밖을 서성이던 낯선 할머니로 인하여 시작하게 되었다.

지나가는 길에 여기 살던 친구가 생각나서 들렸노라고 하시기에 이 터를 내게 팔고 서울 아들네로 가신다던 할머니의 안부를 물으니 가신지 1년 만에 자살을 하셨다며 말끝을 흐리시는 것이었다. 며칠을 할머니 생각으로 가슴앓이를 하다가, 작업실 한 켠에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인고의 세월이 아로새겨진 할머니의 얼굴이 아름다워 찍어 드렸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으로나마 이곳에 계시라고 붙여 두었던 사진들은 이미 빛이 바래져 있었다. 이곳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다 떠난 그 분을 그려드리는 것, 그것만이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진혼의 의식이었다. 그렇게 할머니의 영정을 그리면서, 오랜 세월 작업실 여기저기에 부적처럼 붙혀 두었던 사람들의 사진도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오래전 책에서, 신문에서, 길에서, 영화 속 화면에서 내 시선이 꽂혔던 그 얼굴들은 나에게 삶과 죽음의 비의를 전하기 위해 보내진 밀사들처럼 수 십 년 동안 한결같은 비장함으로 작업실의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달팽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가을숲에 귀 기울이고 있던 눈먼 소년, 나는 그 소년의 눈꺼풀 속 가을 숲을 그려보고 싶었다. 천 년 전 어느 고승이 불렀다는 못다 이룬 사랑노래를 부르며 내게로 걸어왔던 미친 여승, 나는 눈물 가득한 그녀의 눈망울에서 고승을 그리워하는 공주의 사무친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의 손에 뉘인 죽어가는 병자의 얼굴, 나는 아침 햇살이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것을 보았다. 영화 Runaway Train에서 탈옥수역을 하는 존 보이트, 그는 젊은 동료를 살리기 위해 고장 난 기차를 탈선시켜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다. 어느 날 아침 신문에서 마주친 아내 살해자로 체포된 광부, 그의 얼굴은 살해자의 얼굴이 아니라 수난자의 얼굴이었다. 이스라엘군에 의해 피살된 동생의 복수를 위해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하기 직전의 팔레스타인 청년의 모습, 그 입가의 미소… 그들이 아니었으면 길을 잃었을 내 정신의 등불들,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그 품에 안길 수 있었던 아버지, 쉰이 넘은 딸이 그리는 스무살 아버지…

그들의 얼굴에는 사는 동안 그들과 함께 했던 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골고다의 언덕에 끌려가는 예수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준 베로니카의 손수건에 새겨졌다는 예수의 얼굴처럼, 모든 사람의 얼굴은 신의 모습이 아로새겨진 베로니카의 손수건이 아닐까.

한강_어떤지옥

어떤 지옥,

뭉게어진 얼굴,

당신은 뭉게어져 봤는가.

철저히, 윤곽없이, 살과 얼굴이 뭉게어졌는가.

그 기억이 당신의 존재를 시시때때로 문지르고

그 자리에서 피가 흐르는가.

어둠 저 편에서 나를 바라보는 얼굴,

그 눈을 똑바로 마주 본다는 것,

내 심연에서 지금 막 솟아오르는 얼굴,

빤히 올려다보는 응시하는 눈…

다만 명징한 눈

그 눈이 왜 무서웠을까.

나도 명징하게 마주보면 되는데

명징하게

명징하게

그 순간 낸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문득 알았다.

당신

당신이 저 지옥을 겪었(는)다 해도

제 집처럼 지옥을 샅샅이 알고

귀신처럼 어둠 저 편을 뭉게진 채 헤맨다 해도

저 눈을, 저 얼굴을, 저 명징한 눈으로 마주 모았다면,

명징하게 응시해 냈다면, 당신은 이긴 것이다.

당신은 이긴 것이다.

그 말을 되뇌는 동안

눈물은 계속 흘러 내렸다.

나는 이길 수 있을까,

나는 패배하지 않았나.

_ 금산화랑 전시를 보고